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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EL ANGEL
0104
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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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 세계에는 실재인 것들이 존재한다. 우리가 이름을 붙여주지 않아도 실재인 것들이. 어떤 분류학자가 어떤 물고기 위로 걸어가다가 그 물고기를 집어 들고 “물고기”라고 부른다고 해서 그 물고기가 신경이나 쓰겠는가. 이름이 있든 없든 물고기는 여전히 물고기인데…. 맞지? 맞겠지?

제인 오스틴의 책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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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 항상 책을 읽었다. 어린 시절에는 매일 밤 방에 불이 꺼지면 손전등을 켜고 잠이 밀려올 때까지 몰래 몇 페이지씩 더 읽었다. 나는 별난 아이였다. 다른 아이들과 잘 어울리지 못했고, 적절한 말을 찾지 못해 헤매다 실패하는 일이 잦았다. 내게 교제는 난제였다. 하지만 책에서 만나는 인물들은 그렇게 당황스럽지 않았다. 사실 나는 살아 있는 사람들보다 죽은 사람들과 더 쉽게 교감한다. 허구의 인물들도 거기 포함된다. 내게 필요한 것은 적당한 거리다. 감정은 벅차고 두렵다. 거리는 감정을 두려움 없이 들여다볼 안전지대를 제공한다. 나는 초등학교 때 로알드 달의 «마틸다»(1988)를 여섯 번쯤 읽었다. 마틸다에게서 나처럼 좀 별나고, 다른 아이들과 잘 어울리지 못하는 소녀를 보았다. 마틸다는 머리를 써서 행복을 찾았다. 어쩌면 나도 지성으로 행복을 찾을 수 있을지 모른다고 생각했다. 내게 마틸다 같은 염력은 없었지만, 나도 마틸다처럼 책 읽는 것을 좋아했다. 물론 열 살 때는 그런 생각을 말로 표현할 능력이 없었다. 그때는 그저 이렇게 말했다. 나는 «마틸다»가 좋아.

 

세기가 달라졌어도 그 문제는 여전했다. 바로 로맨스 작가를 ‘잡필가’ 취급하는 문제. 로맨스는 철저히 여성적으로 인식되는 유일한 장르다. 또한 로맨스는 오랫동안 장르 소설 중에 가장 경멸받아왔다. 나는 이 두 사실이 넓게 겹쳐 있는 것이 단지 우연이 아니라는 생각을 해보지 못했다. 그러고도 페미니즘을 논했다니!